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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반의 말
안개여
너는 온 몸으로 나를 감싸고 있어
커다란 대추모양으로
하지만 난 너를 배반 한다
나는 씨가 아니라 나무로
모양을 키우기 시작했거든
굵은 줄기에서 뻣뻣하게 가지를 뻗으며
지난여름의 살기를 품은 억센 가시로
나를 안은 너의 가슴과 목덜미와 턱과 겨드랑이
그리고 네 음부 근처 부드러운 허벅지까지,
찔릴 때 고통보다 빼는 고통이 더하도록
힘껏 찌르고 있어
가끔 너의 고통을 생각할 뿐,
나의 의도는 단 한 가지
네 살갗 속 신선한 생살과 박동하는
핏줄을 유린하고 붉은 피를 터뜨려
살과 박힌 가시의 미세한 틈으로
흘러내리게 하는 것
나는 네 피에 젖으며
배어나오는 핏물과 신음처럼
천천히 눈물만 흘릴 거야
온몸으로 감싸 나를 보호해 온 안개여
나는 이렇게 너를 배반하고 있다
언젠가, 배반의 가시가 녹을 리 없고
네 몸에 박힌 가시가 나 자신이라는 걸
내가 절대의 배반 자체라는 걸
알아차리거든 그날,
나의 아버지께도 이 말을 전해 주길
(2010년)